2. 뮤지컬과 오페라는 뭐가 다를까
🎤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뮤지컬과 오페라는 모두 음악, 연기, 무대미술, 조명, 의상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입니다. 무대 위에서 배우 혹은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극적인 순간에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식도 닮아 있죠. 이 때문에 처음 접하는 분들은 두 장르가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태어난 시대, 음악 스타일, 발성 방식, 관객의 태도, 그리고 감상법까지 매우 다릅니다.
차이점 1: 음악의 역할과 표현 방식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음악 중심이냐, 이야기 중심이냐’입니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극 전체를 이끄는 구조입니다. 등장인물의 말, 갈등, 감정, 사건 전개 모두가 음악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처리됩니다. 특히 설명을 담은 레치타티보와, 감정을 폭발시키는 아리아가 이 구조의 핵심입니다. 아리아는 마치 일시정지된 시간 속에서 인물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는 딸 질다가 “Caro nome(사랑하는 이름이여)”를 부르며 첫사랑의 감정에 젖어듭니다. 이 곡 하나로 질다의 순수함, 사랑의 설렘, 앞으로 벌어질 비극의 복선까지 암시하죠.
반면, 뮤지컬은 연극의 구조 속에 음악이 삽입된 형태입니다. 이야기 전개는 주로 대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에만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래보다는 ‘대사’의 비중이 큰 편이며, 이야기가 좀 더 빠르게 전개됩니다. 《레미제라블》처럼 거의 모든 장면이 노래로 이뤄진 뮤지컬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뮤지컬은 말과 음악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차이점 2: 발성, 훈련, 연기력
오페라는 클래식 성악 기법을 바탕으로 공연됩니다. 마이크 없이 수백, 수천 명이 앉은 공연장의 끝까지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므로, 벨칸토 발성과 같은 기술적 기반이 필수입니다. 소리를 공명시키는 위치, 호흡의 사용, 발음 처리 모두 수년간 훈련한 전문 성악가들만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실제로 오페라 가수는 악기와 같은 목소리로 극을 이끌어나가며, 노래 자체가 연기이자 감정 표현이 됩니다.
반면, 뮤지컬 배우는 노래, 연기, 춤까지 소화하는 만능형 아티스트입니다. 마이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페라처럼 성량에 집중하기보다는, 감정 표현과 대중성과 전달력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팝,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창법이 허용되고, 대사처럼 부르는 ‘스포큰 송’도 자주 등장합니다. 따라서 뮤지컬은 좀 더 친근한 방식으로 관객과 교감하는 공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 3: 공연장의 분위기와 관람 문화
공연장의 분위기도 크게 다릅니다. 오페라는 정제된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클래식 공연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드레스 코드에 신경 쓰는 경우도 많고, 공연 중 함부로 박수치지 않으며, 조용히 감상하는 것이 기본 예절입니다. 공연 중간에는 ‘인터미션’이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자막을 통해 외국어 대사를 이해하게 돕습니다. 관객의 태도는 마치 고전 예술을 감상하는 박물관 관람객과도 비슷한 면이 있죠.
반면 뮤지컬은 보다 자유롭고 대중적인 분위기를 지향합니다. 캐주얼한 복장으로 관람이 가능하고, 극 중 유머에 웃거나 감동적인 장면에 박수를 보내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커튼콜에서 배우와 눈을 맞추며 환호를 보내는 것도 뮤지컬 관람의 묘미입니다. 분위기 자체가 활기차고 즉흥적인 반응을 장려하는 쪽이죠. 공연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다는 점은 오페라와 동일한 부분입니다.
차이점 4: 다루는 소재와 주제
소재 면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페라는 비극, 신화, 역사, 고전 문학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극적인 오페라도 있지만, 대체로 고전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돈 조반니》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방탕남 이야기를 다루며, 《일 트로바토레》는 복수와 사랑이 얽힌 중세의 비극을 무겁게 그립니다.
반면 뮤지컬은 현대적이고 다양한 소재를 아우릅니다. 학교, 직장, 사랑, 우정, 사회 문제, 페미니즘, 인종차별, 성소수자 이슈까지 다루며, 관객과의 거리도 훨씬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렌트》는 HIV에 걸린 젊은 예술가들의 삶을, 《빌리 엘리어트》는 한 소년의 꿈과 사회적 배경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풀어냅니다.
🎭 뮤지컬과 오페라의 교차점: 경계를 허무는 현대 공연들
최근에는 뮤지컬과 오페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그 제목처럼 오페라 무대와 성악 스타일을 적극 활용했고,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나 푸치니의 《토스카》는 현대적 연출과 영상 기술로 뮤지컬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성악가 출신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거나, 뮤지컬 배우가 오페라 무대에 도전하는 사례도 종종 등장합니다.
또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처럼 거의 모든 대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통창(송스루, through-sung)’ 구조는 오페라와 가장 유사한 뮤지컬 형식으로, 두 장르의 중간지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론: 내가 선호하는 감동은 어떤 색깔인가?
뮤지컬과 오페라 중 무엇이 더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페라는 깊이있는 음악과 감정의 고조, 극적인 구조를 즐기는 사람에게 적합하고, 뮤지컬은 빠른 전개, 직관적인 메시지, 대중적 감동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알맞습니다. 어느 장르를 먼저 시작하든, 다른 장르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로 전하는 이야기”, 이것이 두 장르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매력입니다. 한 번쯤은 양쪽 모두 직접 경험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감상법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