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페라의 탄생 (16세기 말~17세기 초)
오페라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연극이 아닙니다. 음악, 문학, 무대예술이 융합된 복합 예술로서, 르네상스 후기에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독특한 예술 형식입니다. 오페라는 "작품"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opera'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여러 예술 요소가 협력하여 만들어지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복원하려는 지식인, 예술가들의 모임인 ‘카메라타(Camerata)’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극이 당시의 다성 음악처럼 복잡한 음악이 아닌,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monody)으로 전달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음악과 극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예술 형식을 모색했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오페라’의 시작이 됩니다.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는 작품은 야코포 페리의 『다프네(Dafne)』(1598)입니다. 하지만 악보는 소실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실질적으로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같은 작곡가의 『에우리디체(Euridice)』(1600)입니다. 이 작품은 페리와 카메라타의 이상을 담아, 단성 선율과 단순한 반주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직접 전달하려 했습니다. 당시 오페라는 상류층의 궁정이나 귀족 후원자들을 위한 사교 행사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2. 바로크 오페라 전성기 (17~18세기 초)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가 태동에서 나아가 본격적으로 예술로 자리 잡은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오페라는 점차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음악적 기법과 무대 연출, 극작 구성 등 다양한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1. 오페라의 예술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페라의 예술적 깊이를 확장한 인물로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잇는 작곡가로, 오페라 형식에 극적인 긴장감과 감정 표현을 더해 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대표작 『오르페오(Orfeo)』(1607)는 사실상 ‘최초의 완전한 오페라’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은 신화 속 인물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를 저승에서 되찾으려는 여정을 다루며,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구성으로 당시 음악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몬테베르디는 아리아(독창곡)와 레치타티보(말하듯 노래하는 부분)를 적절히 구분하여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끌었고, 관현악의 표현력을 극대화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후기작 『포페아의 대관(Poppea's Coronation)』(1643)은 오페라가 종교적 혹은 신화적 주제를 넘어, 실제 역사 인물을 바탕으로 한 세속적인 소재까지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처럼 몬테베르디는 오페라를 귀족들의 사교 행사를 위한 장르, 실험적 장르에서 정식 예술 형식으로 정립시킨 선구자였습니다.
2-2. 오페라의 대중화: 베네치아의 상업 오페라
1640년대 이후, 이탈리아 북부 특히 베네치아에서는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상업 오페라 극장의 등장입니다. 이전까지는 귀족이나 교회가 후원하는 궁정 오페라가 주류였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시민들도 돈을 내고 관람할 수 있는 공공 극장이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1640년 산 카시아노 극장(Theatre of San Cassiano)은 세계 최초의 상업 오페라 극장으로, 누구나 입장료만 내면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오페라는 일부 귀족층의 전유물에서 탈피하여 중산층 시민과 관광객들에게도 접근 가능한 대중 예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페라 내용과 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귀족 중심의 무거운 신화 대신, 인간적인 감정과 일상의 갈등을 담은 오페라 부파(Opéra buffa, 희극 오페라)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페라의 길이도 짧아지며 극장 수익을 고려한 형태로 진화해갔습니다. 베네치아는 이후 17세기 후반까지 수십 개의 오페라 극장이 세워질 정도로 오페라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2-3. 오페라의 확산: 헨델과 독일-영국 오페라 발전
바로크 후기에 접어들며 오페라는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특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독일 출신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입니다.
헨델은 이탈리아 유학을 거쳐 오페라 작곡 기법을 익힌 후, 영국 런던에서 활약하며 수많은 이탈리아어 오페라 세리아(Opéra seria)를 발표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리날도(Rinaldo)』(1711),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1724) 등이 있으며, 화려한 아리아와 극적인 구성, 테너와 카스트라토(변성기 전에 거세된 남성 성악가, 아래 상세 설명 참고)의 고난도 기교로 관객들의 열광을 이끌었습니다.
헨델의 오페라는 당시 런던의 왕족과 귀족, 시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지만, 후반기에는 영어 오라토리오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오페라 제작의 막대한 비용, 관객층의 취향 변화, 그리고 오페라 부파의 인기 상승 등이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독일에서도 오페라가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이탈리아식 양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곧 독자적인 독일어 오페라 양식이 자리잡기 시작하며, 이후 글루크, 모차르트, 바그너로 이어지는 흐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2-4. 카스트라토: 바로크 오페라를 지탱한 비극적인 별들
이 시기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 중 하나는 바로 카스트라토(Castrato)였습니다. 카스트라토는 소년기의 변성기 전에 거세된 남성 성악가로, 여성의 무대 출연이 제한된 시대에 고음역대의 역할을 맡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카스트라토는 단순히 높은 음을 낼 수 있어서 선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성인 남성의 폐 용량과 강한 흉곽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에, 엄청난 성량과 탁월한 호흡 조절, 섬세한 프레이징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이 독특한 음색과 기술은 바로크 오페라의 기교적인 아리아와 완벽히 어우러졌으며, 작곡가들은 그들을 위해 특별한 아리아를 작곡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카스트라토 중 하나인 파리넬리(Farinelli)는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고, 스페인 궁정에서 우울증에 빠진 국왕을 매일 노래로 위로한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헨델의 오페라에서 활약한 세나시노(Senesino)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카스트라토였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라토 제도는 인권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이후 여성 성악가의 활약이 증가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19세기에는 거세를 법적으로 금지하게 됩니다. 교회 합창단에서도 1903년 교황 비오 10세의 명령으로 카스트라토 사용이 중지되면서, 이 비극적인 전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카스트라토가 맡았던 역할은 카운터테너나 여성 성악가가 대체하고 있으며, 그들이 남긴 레퍼토리는 바로크 음악의 소중한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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