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37. 작곡가와 대본가의 협업 사례 (2) 오페라를 탄생시킨 창조적 동반자들

world1info 2025. 5. 7. 20:10

1편에서는 다 폰테와 모차르트, 보마르셰와 로시니, 샤르팡티에와 퀴노 등 고전 오페라 시대의 대표적 협업 사례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19세기 이후 낭만주의와 근현대 오페라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든 작곡가와 대본가의 협업을 소개합니다.


1.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노년의 거장을 다시 불태운 지적 동반자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등으로 이미 명성을 쌓았지만, 《아이다》 이후 한동안 창작 활동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은퇴를 기정사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창작과 무대로 이끈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아리고 보이토입니다.

보이토는 시인, 작곡가, 비평가로서 문학적 감각과 오페라 구조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개정 작업을 통해 협업을 시작했고, 이후 《오텔로》(1887)와 《팔스타프》(1893)라는 두 걸작을 함께 완성했습니다.

《오텔로》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보이토의 각색을 통해 극적 구조와 리듬이 더욱 정제된 형태로 재구성되었으며, 베르디는 이를 바탕으로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인물 간 심리적 갈등을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통해 드러내는 솜씨는 백미로 꼽힙니다.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이자 희극 장르에서 보기 드문 음악적 실험을 선보인 작품입니다. 보이토는 복잡하고 빠른 대사를 리듬감 있게 배열했고, 베르디는 이를 생동감 넘치는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보이토는 단순한 대본가를 넘어 베르디의 영감을 자극한 지적 동반자였으며, 베르디는 그를 “내게 새로운 불을 붙여준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이 협업은 노년의 작곡가가 어떻게 예술적으로 제2막을 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2.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근대 정신과 상징주의의 융합

20세기 초, 독일-오스트리아 문예계에서 활동한 대본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은 상징주의 문학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시적 언어와 상징적 세계관은 후기 낭만주의에서 근대 음악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활동하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만나 독창적인 오페라 세계를 탄생시켰습니다.

두 사람의 협업은 1900년대 초, 독일어권 문화예술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이미 《살로메》(Salome, 1905)로 주목받고 있었고, 호프만슈탈은 당대 유럽 문단과 예술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시인이자 극작가였습니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의 희곡 《엘렉트라》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에게 편지를 보내며 협업을 제안했고, 이것이 두 사람의 오랜 동반자 관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호프만슈탈은 슈트라우스를 위한 대본 작업을 본격화하며, 이후 20여 년 간 긴밀한 교류와 공동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편지로 작업 지시를 주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 인물 구성, 철학적 방향까지 수차례 조율하며 공동 창작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엘렉트라》(1909), 《장미의 기사》(1911), 《아리아드네 나크소스에서》(1912), 《그림자 없는 여인》(1919) 등이 대표작으로, 이들의 협업은 극의 철학성과 음악적 실험성을 조화롭게 결합한 예술적 총화로 평가받습니다.

《엘렉트라》는 그리스 비극을 바탕으로 한 강렬한 심리극으로, 슈트라우스는 복잡한 관현악 구성과 불협화음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고, 호프만슈탈은 여기에 욕망, 죄의식, 복수심 등을 철학적으로 녹여냈습니다. 《장미의 기사》는 18세기 빈을 배경으로 귀족사회의 사랑과 성장, 시대 변화에 대한 향수를 그린 작품으로, 음악적 유희와 문학적 세련미가 절정을 이룹니다.

이들의 협업은 단순히 음악과 대사의 조화를 넘어, 동시대 예술사조와 정신세계를 반영한 복합 예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 프란츠 레하르(Franz Lehár)와 빅토르 레온(Victor Léon), 레오 슈타인(Leo Stein): 오페레타의 부흥과 대중예술의 전환점

오페레타는 전통 오페라에서 파생된 장르로,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모색한 무대예술입니다. 프란츠 레하르는 《유쾌한 미망인》(1905)을 통해 이 장르의 황금기를 열었고, 이 작품은 빅토르 레온과 레오 슈타인의 대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유럽 상류층의 풍속을 우아하게 풍자하면서도 감성적인 멜로디와 극적 리듬의 조화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본은 유머와 감정, 무용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구성되었고, 레하르의 감미로운 음악과 완벽히 어울렸습니다.

비록 오페레타는 오페라와는 다르지만, 이들의 협업은 음악극의 대중화와 예술성 향상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뮤지컬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37. 작곡가와 대본가의 협업 사례 (2) 오페라를 탄생시킨 창조적 동반자들

4. 존 아담스(John Adams)와 앨리스 굿맨(Alice Goodman): 현대사의 오페라적 재구성

현대 오페라에서 주목할 만한 협업 사례로는 미국 작곡가 존 아담스와 대본가 앨리스 굿맨의 협업이 있습니다. 대표작 《닉슨 인 차이나》(1987)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라는 현대사를 소재로, 오페라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굿맨은 냉전, 외교, 미디어와 같은 복잡한 주제를 시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풀어냈고, 아담스는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통적인 오페라 요소를 결합해 독창적인 음악극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도 오페라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20세기 후반 오페라의 주제와 형식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이외에도 필립 글래스와 데이비드 헨리 황의 《천 개의 항아리》, 카이자 사리아호와 아민 마알루프의 《L’amour de loin》 등은 현대 오페라에서 작곡가와 대본가 협업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줍니다.


시대와 예술사조가 변화함에 따라 작곡가와 대본가의 협업 양상도 진화해 왔습니다. 고전 오페라가 음악과 시의 조화를 중심에 두었다면, 현대 오페라는 사회적 메시지, 역사적 맥락, 실험적 형식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예술로 확장되었습니다. 창의적인 파트너십은 여전히 오페라의 핵심 동력이며, 앞으로도 오페라라는 장르의 미래를 견인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