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41. 오페라 작곡가들의 인간관계와 경쟁사 (2)

world1info 2025. 5. 11. 00:47

3. 헨델과 보논치니 – 런던을 양분한 두 이방인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과 조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1747)는 18세기 초 런던 음악계를 양분한 대표적인 ‘양대 산맥’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적대적인 언행을 보인 것은 드물지만,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과 후원층의 대립이 런던 전체를 흔들 정도로 팽팽했습니다.

보논치니의 등장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는 1720년대 런던에서 헨델과 함께 왕립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의 주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보논치니는 헨델보다 나이가 많고 이미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명성을 얻은 작곡가였습니다. 1720년대 초, 런던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붐이 일고 있었고, 이탈리아적 멜로디와 구조에 익숙한 청중은 보논치니의 음악에 더 쉽게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귀족층 후원자들은 보논치니의 우아하고 단순한 작곡 스타일을 선호했습니다.

헨델과의 경쟁

헨델은 이미 런던에서 수많은 오페라를 성공시킨 상태였고, 영국 국왕의 후원을 받는 등 공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논치니가 런던에 입성하면서 귀족층 내에서도 ‘보논치니 지지파’와 ‘헨델 지지파’가 생겨났고, 이는 곧 정치적인 색채까지 띠게 됩니다.

  • 보논치니를 후원한 대표적인 인물은 말버러 공작부인으로, 토리당과 연관된 세력이었고
  • 헨델은 하노버 왕실과 휘그당의 지지를 받았으며, 국왕 조지 1세와 조지 2세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41. 오페라 작곡가들의 인간관계와 경쟁사 (2)

대립의 절정: 공동작업 프로젝트

1727년, 런던 귀족 아카데미에서는 헨델, 보논치니, 아리아가티가 각자 한 장면씩 작곡한 합작 오페라 <무제의 아스페르타>를 발표합니다. 헨델이 작곡한 2막은 극찬을 받았고, 보논치니의 1막은 상대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음악적 대결을 넘어서 청중의 취향, 귀족 정치, 문화적 갈등을 반영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경쟁은 당시 시인 존 바이럼이 풍자하여 "트위들덤과 트위들디(Tweedledum and Tweedledee)"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보논치니의 몰락

결정타는 표절 사건이었습니다. 보논치니는 후속 작품에서 안토니오 로티의 마드리갈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하여 표절한 혐의를 받게 되었고, 이 사건은 영국 음악계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논의된 표절 사건 중 하나입니다. 보논치니는 이로 인해 신뢰를 잃고 런던을 떠나게 되며 이후 빈에서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헨델은 런던 음악계를 독점하며 오라토리오 작곡에 집중하게 됩니다.


4. 글루크와 피치니: 개혁과 전통의 충돌

오페라 개혁의 배경과 갈등

18세기 후반,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오페라에서 음악과 드라마의 통합을 강조하며, 아리아 중심의 이탈리아 오페라 스타일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음악이 극의 전개를 돕고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페라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반면, 니콜로 피치니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름다움과 기교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는 아리아의 화려함과 성악가의 기량을 중시하며, 기존의 오페라 양식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두 작곡가의 상반된 접근은 파리 음악계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피게니에'를 둘러싼 경쟁과 작품의 내용

글루크와 피치니는 각각 '이피게니에'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파리 오페라의 감독 자크 드 비스므(Jacques de Vismes)는 이 두 작곡가의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동일한 주제인 '이피게니에 엔 토리드(Iphigénie en Tauride)'를 각각 작곡하도록 의뢰했습니다. 글루크의 《이피게니에 엔 토리드》(1779)는 극찬을 받았으며, 피치니의 동일 주제 작품은 1781년에 초연되었지만 비교적 미미한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피게니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아가멤논의 딸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앞두고 아가멤논은 딸을 제물로 바치려 하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이 그녀를 타우리드로 데려가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이후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오빠 오레스테스와 재회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피게니에 엔 토리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이피게니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트로이 전쟁을 앞두고 아가멤논은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려 하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이 그녀를 타우리드로 데려가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이후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오빠 오레스테스와 재회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파리 문화계의 논쟁과 계몽주의 문화의 양상

글루크와 피치니의 경쟁은 단순한 음악적 차이를 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문화적 자존심이 걸린 대결로 확산되었습니다. 파리의 지식인들과 귀족들은 두 작곡가를 지지하며,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글루크를 지지하는 철학자들은 계몽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오페라가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피치니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전통적인 오페라의 아름다움과 기교를 중시하며, 기존의 양식을 고수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오페라를 둘러싼 문화적 갈등을 넘어, 계몽주의 시대의 예술과 철학의 충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